초록 머리를 가진 소녀 아네트는 평범한 듯 특별한 마을에서 태어나, 우연히 마법의 문을 발견하며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발을 내딛게 됩니다. 그녀가 만난 낯선 도시는 빛을 잃고, 감정을 잊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아네트는 마법이란 단지 힘을 쓰는 기술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따뜻한 연결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성장과 모험, 그리고 진짜 ‘마법’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감성 판타지 여정입니다. 동화책을 한 장씩 넘기듯, 따뜻하고도 신비로운 아네트의 여정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아네트 : 숲에서 들려온 속삭임
초록빛 숲의 작은 마을 리라의 들판에는 전설 하나가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전, 세상이 마법과 감정으로 가득하던 시절, 초록 머리의 아이가 태어나면 닫힌 마법의 문이 다시 열릴 거라는 말이었죠. 아네트는 바로 그 마을에서 태어난 아이였습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마치 새싹처럼 맑은 초록빛을 띠고 있었고, 그 모습만으로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이 특별하다는 걸 전혀 믿지 않았습니다. 하루하루를 친구인 말하는 고양이 피르와 함께 뛰어놀며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숲 가장자리에서 이상한 빛이 스며 나오는 낯선 공간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까이 다가가자 마치 심장이 뛰는 것처럼 문에서 진동이 느껴졌고, 그곳엔 은은한 소리로 그녀를 부르는 듯한 울림이 있었습니다. 피르는 그 문을 보자마자 놀란 눈으로 말합니다. “이건 오래전 마법의 문이야. 네가 열 수 있어.” 아네트는 망설였지만 왠지 그 문을 지나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문에 손을 얹었고, 눈 깜짝할 사이에 주변 풍경이 사라지고 전혀 다른 세계로 빨려 들어가게 됩니다. 그곳은 하늘이 둥글게 휘어진 형태였고, 땅은 투명하게 빛나며 붕 떠 있는 듯한 신기한 곳이었습니다. 처음엔 마냥 아름답게 느껴졌지만, 곧 이상한 정적이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의 눈엔 감정이 없었고, 웃음이나 슬픔, 기쁨 같은 감정들이 사라진 듯 보였습니다. 마치 정해진 대로만 움직이는 인형들 같았죠. 그 순간, 아네트는 이 세계에 무언가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녀의 머릿속엔 오래전 들은 마을의 전설이 떠오릅니다. ‘초록 머리를 지닌 아이가 마법의 문을 열고, 잊힌 감정을 되살릴 것이다.’ 아네트는 그 이야기가 단순한 옛말이 아니었음을 처음으로 실감하게 되며, 자신이 왜 이 문을 지나게 되었는지를 묻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그녀의 여정은 시작됩니다. 단순히 호기심에서 열린 문이었지만, 그 너머엔 상상도 하지 못한 운명과 진실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앞으로 만날 모든 세계의 시작이기도 했습니다.
에브라노스에서 맞이한 첫 번째 시련
문을 지나 도착한 첫 번째 도시는 ‘에브라노스’였습니다. 하늘은 짙은 회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태양은 단 한 줄기의 빛조차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검은 망토를 두르고,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하루를 견디고 있었습니다. 말 한마디 없고, 눈빛조차 없는 이 도시는 ‘그림자의 지배자’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고 있었으며, 감정은 위험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아네트는 처음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랐습니다. 이 낯선 도시에서 유일하게 말을 건넨 이는 루시엔이라는 소년이었습니다. 그는 조용했지만 눈빛엔 뭔가 단단한 것이 있었고, 아네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듯한 태도였습니다. 루시엔은 말합니다. “이 도시는 웃음을 잃은 지 오래야. 감정은 그림자에게 잡아먹혔지.” 그와 함께 아네트는 오래된 폐허 속 마법학교를 찾게 됩니다. 그곳 지하에는 빛이 거의 닿지 않는 도서관이 숨겨져 있었고, 고대 마법서들이 먼지 속에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중 하나엔 아네트와 똑같은 머리색을 가진 아이가 등장하는 예언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초록 머리 아이가 도시에 빛을 불러올 것이다.’ 그녀는 믿기 어려웠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그림자의 지배자가 그녀의 존재를 감지하게 되었고, 도시 전역에 아네트를 추적하라는 명령이 떨어집니다. 도망치는 길에서 루시엔은 처음으로 분노와 절망을 토해내듯 말합니다. “난 늘 누이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살았어. 넌 달라. 넌 이 도시를 바꿀 수 있어.” 그 말은 아네트의 마음속 깊은 곳에 불을 지폈고, 그녀는 피하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도시 중앙에 세워진 어둠의 탑 앞, 수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네트는 말없이 빛을 끌어올립니다. 아무 주문도 외우지 않고, 단지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전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도시 하늘에 작지만 분명한 틈이 열리며 한 줄기 빛이 스며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처음엔 두려워했지만, 곧 그 빛에 감정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눈물을 흘리고, 서로를 껴안으며, 잊고 있던 감정을 다시 느낀 것입니다. 아네트는 마법으로 도시를 바꾼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마음을 열어 세상을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게 진짜 마법이었습니다. 그림자의 지배자는 조용히 사라졌고, 에브라노스는 마침내 아침을 맞이합니다. 이 여정은 아네트에게 두려움을 넘는 용기를 안겨주었고, 사람들에게는 잃어버렸던 감정의 소중함을 다시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감정을 잃은 도시, 실베리아
아네트가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실베리아’였습니다. 이곳은 겉보기엔 매우 질서정연하고 평화롭게 보였지만, 그 이면엔 철저히 통제된 삶이 있었습니다. 감정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모든 감정을 작은 구슬 속에 저장한 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울지도 웃지도 않으며, ‘안정’과 ‘효율’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었습니다. 아네트는 이 도시에 들어서자마자 그 차가운 공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말하는 사람도, 웃는 사람도 없는 거리 속에서 그녀는 점점 혼란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스스로 감정이 없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어떻게 해야 감정을 잃은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전할 수 있을지 고민에 빠집니다. 그러던 중, 도시의 구석진 곳에서 만난 한 노인이 작은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아네트에게 말합니다. “이 도시는 원래 음악의 도시였단다. 감정이 넘쳐서 혼란도 많았지만, 그 혼란 속에 생명이 있었지.” 그 말은 아네트의 마음에 강하게 박혔고, 그녀는 감정을 되찾게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하지만 도시의 통치자인 리네우스는 그녀의 행동을 위험요소로 간주하고 체포 명령을 내립니다. 아네트는 도망치지 않고, 도시 중앙 광장에서 조용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점차 사람들의 마음에 닿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이는 기억 속 어머니의 따뜻한 품을 떠올렸고, 어떤 이는 첫사랑의 눈빛을 기억해 냈습니다. 실베리아는 점차 숨을 쉬기 시작했습니다. 리네우스 역시 아네트 앞에 나타나 분노를 터뜨렸지만, 결국 그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합니다. “나도… 감정을 느끼고 싶었어.” 그녀는 손을 내밀며 말합니다. “감정은 약함이 아니라, 진짜 마법이에요.” 그렇게 실베리아에도 변화가 시작됩니다. 아네트는 이번에도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사람의 마음에 다가갔고, 그것이 이 도시를 구한 열쇠가 되었습니다. 세 번째 여정까지 마친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초록 머리의 소녀는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진짜 마법사로 성장해 있었습니다.